[스크랩] 정월 큰보름 날
구정을 쇠고 나면 어쩌면 구정보다 더 큰 명절이었던 대보름 날.
국민학생 5, 6학년 쯤 돼던 때에 구루마를 서너대를 나눠서 끌고 집집마다 다니며 짚 한 단씩과 쌀 한 웅큼을 거두러 다녔지.
청년이 된 행님들과 아제들은 동네 베꿈마당에서 자치기 시합으로 시작을 알리고 누야들과 아지매들은 거둬 온 쌀과 잡곡으로 밥을 짓고 할배들은 120근 정도 되는 검은 돼지를 눕혀 놓고 동네 잔치를 준비한다.
해가 서쪽으로 넘어갈 때 쯤, 큰 가마솥에서 씨락국과 구수한 밥과 돼지 국밥이 다 되어 갈 쯤이면 자치기에서 진 행님들은 달집을 짓기 시작하며 귀밝이 술을 거하게 한 잔 들이킨 할배와 아제들, 아부지와 엄마, 온 동네 행님들은 모두가 한데 어울려 북과 꾕과리 소리에 흥겨운 보름 잔치는 절정에 다다른다.
구수한 밥으로 배를 채우고 술과 고기로 흥을 돋우면 산 너머로 커다란 달덩이가 올라오면서 마음속에 간직한 소원을 작은 한지에다 적어서 달집에 메달아 두고 동네의 제일 큰 어른이 달집에 불을 지피면 두 손 모으고 소원을 빈다. ' 동네 아 들 다마 다 따묵게 해주이소' ' 공부 몬해도 안 머라하게 해주이소'
" 에이, 망할 노무 소상들~~" 할매들의 정감어린 욕지거리에도 아랑곳 없이 온 동네 꼬마들은 쥐불 돌리느라 강생이처럼 뛰어 다니고 기회다 싶은 행님들은 빨게진 누야들을 꼬시느라 정신이 없고..
어느 새 아련한 추억이 되어 버린 정월 대보름. 산 불 걱정에 달집도, 쥐불놀이도 문화재급이 되어 버린 지금이 지난 기억을 더욱 그립게 만든다.
엄마의 나물찜이 눈물겹게 먹고 싶어지는 중년의 큰 보름날.
"친구들! 내 더위 다 가져 가시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