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양식/좋은 글

[스크랩] 정월 큰보름 날

황소-황동훈 2008. 2. 21. 13:07

구정을 쇠고 나면

어쩌면 구정보다 더 큰 명절이었던 대보름 날.

 

국민학생 5, 6학년 쯤 돼던 때에

구루마를 서너대를 나눠서 끌고

집집마다 다니며

짚 한 단씩과 쌀 한 웅큼을 거두러 다녔지.

 

청년이 된 행님들과 아제들은 동네 베꿈마당에서

자치기 시합으로 시작을 알리고

누야들과 아지매들은 거둬 온 쌀과 잡곡으로 밥을 짓고

할배들은 120근 정도 되는 검은 돼지를 눕혀 놓고

동네 잔치를 준비한다.

 

해가 서쪽으로 넘어갈 때 쯤,

큰 가마솥에서 씨락국과

구수한 밥과 돼지 국밥이 다 되어 갈 쯤이면

자치기에서 진 행님들은 달집을 짓기 시작하며

귀밝이 술을 거하게 한 잔 들이킨

할배와 아제들,  아부지와 엄마, 온 동네 행님들은

모두가 한데 어울려 북과 꾕과리 소리에

흥겨운 보름 잔치는 절정에 다다른다.

 

구수한 밥으로 배를 채우고 술과 고기로  흥을 돋우면

산 너머로 커다란 달덩이가 올라오면서

마음속에 간직한 소원을 작은 한지에다 적어서

달집에 메달아 두고

동네의 제일 큰 어른이 달집에 불을 지피면

두 손 모으고 소원을 빈다.

 ' 동네 아 들 다마 다 따묵게 해주이소'

 ' 공부 몬해도 안 머라하게 해주이소'

 

" 에이, 망할 노무 소상들~~"

할매들의 정감어린 욕지거리에도 아랑곳 없이

온 동네 꼬마들은 쥐불 돌리느라 강생이처럼 뛰어 다니고

기회다 싶은 행님들은 빨게진 누야들을 꼬시느라 정신이 없고..

 

어느 새 아련한 추억이 되어 버린 정월 대보름.

산 불 걱정에 달집도, 쥐불놀이도 문화재급이 되어 버린 지금이

지난 기억을 더욱 그립게 만든다.

 

엄마의 나물찜이 눈물겹게 먹고 싶어지는

중년의 큰 보름날.

 

"친구들! 내 더위 다 가져 가시게~~~"

출처 : 남지초등학교58회동창회
글쓴이 : 황동훈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