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양식/좋은 글

40대, 50대의 동창회

황소-황동훈 2008. 6. 28. 15:26

“나이는 먹었어도 마음은 예전 초등학교 다닐 때와 똑같아요. 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냥 만나는 자체가 좋은 거죠.”

충북 옥천군에 사는 강은자(57·주부)씨는 2년 전부터 초등학교 동창회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강씨는 옥천군 삼양초등학교 19회 졸업생. 그동안 가까운 친구끼리 삼삼오오 만나 오다 2년 전 정식으로 동창회 조직을 꾸렸다. 5월 30일엔 옥천군 한 펜션에 40여 명이 모여 1박을 하며 추억을 되새겼다.

각종 동창회는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큰 기둥 중 하나다. 그리고 동창회의 중심에는 언제나 4050이 있다. 30대까지는 동창회에 신경을 쓰지 못하다가 40을 넘으면서 동창회를 찾게 되고, 열심을 내게 된다.

4050이 동창회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강씨는 “아이들이 성인이 돼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고 말했다. 실제로 많은 4050이 ‘시간·경제적 여유’를 첫 번째 이유로 꼽는다. 40대를 넘기면서 남성은 사회적 기반이 잡혀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고, 여성 역시 자녀가 장성해 교육 문제 등의 압박에서 해방된다.

이조정(48·동두천초 48회)씨는 “여유가 생기다 보니 자연스레 어린 날의 순수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되고, 이것이 곧 동창과의 만남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기적으로 부모의 사망, 장성한 자녀의 결혼식 등 애·경사를 앞두고 있어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김춘근·49·강원 화촌중 21회)”는 점도 작용한다.

“4050은 동창회 말고는 특별히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없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20·30대는 싸이월드, 인터넷 동호회 카페 등을 통해 나름의 친목사회를 만들어 나가지만 4050은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들기 쉽지 않고, 그동안 속해 있던 커뮤니티는 일·생활이 중심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속에 있는 얘기를 꺼내기 쉽지 않다. 그러나 ‘동창들은 언제나 내 편’이기 때문에 솔직한 얘기를 할 수 있다는 4050이 많았다.

고교 평준화 이전 세대는 특히 고교 동창회에 매우 열심이다. ‘남다른 애교심’을 이유로 든다. 후배들에게 미안해서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50대 남성은 “시험을 치르고 자신이 간절히 원하던 학교에 진학한 세대와 추첨으로 들어온 세대의 애교심이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교 평준화는 1974년 서울과 부산을 시작으로 전국으로 확대됐다.

동창회 활성화의 배경에는 인터넷 발전이 있었다. 특히 99년 문을 연 ‘아이러브스쿨’의 영향이 컸다. 아이러브스쿨은 오픈 9개월 만에 실명인증 회원수 300만을 확보하며 전국에 ‘동창 찾기’ 열풍을 불러일으켰으나 수익모델 악화, 내부 조직 문제 등으로 급격히 쇠락했 다.

이렇게 되자 동창회는 독자적인 홈페이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젊은 층 뺨치는 인터넷 카페가 생겼고, 부부 동반 해외여행, 수시로 갖는 번개 모임까지 여러 진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광주 숭일고 25회 동창회는 3년 전 중국 황산을 시작으로 지난해엔 일본 후쿠오카, 올 5월엔 대마도에 부부 동반으로 다녀왔다. 모임마다 40여 명이 꾸준히 참석한다. 10여 년 전 산악회로 시작했지만 2004년 9월 동창회 카페를 만들면서 빠른 속도로 팽창했다. 이런 현상은 다른 동창회에도 공통으로 나타난다.

다음카페 동창회 부문 1위인 ‘화촌중 21회 동창회’에는 지난 22일 하루 동안에만 모두 75건의 새 글이 등록됐다.

“점심에 소폭 두 잔을 먹고 들어왔더니 너무 졸린다(아이디 ‘비호’)”는 글이 등록되자 채 5분도 안 돼 “나는 소주 한 병을 먹고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아이디 ‘봉봉’)” “음주 업무는 단속 대상이 아니냐(아이디 ‘코아’)”는 댓글이 따라 붙는다. “일이 잔뜩 밀려있는데 카페에서 나갈 수가 없다(아이디 ‘박용칠’)”는 글에는 “나도 남편이 ‘애들 컴퓨터 많이 한다고 야단치지 말고 당신부터 잘하라’고 한다(아이디 ‘지키미향숙’)”는 댓글이 붙기도 한다. 젊은 층의 소유물로만 여겨졌던 ‘댓글 놀이’와 ‘중독자’가 4050의 인터넷 카페에도 나타난 것이다.

동창회는 단순한 친목에서 벗어나 진화하고 있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4050들이 주축이 되다 보니 다양한 활동을 추구한다. 모교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거나 모교 운동팀을 후원하는 것은 거의 모든 동창회 사업 중 하나다.

기름 유출 사고 피해를 본 고향에 모여 자원봉사를 펼치는 동창회(충남 해양과학고)도 있다. 전주 전라고 6회 총무 마남일(51·자영업)씨는 “태안반도 기름 제거나 고향 농사철 일손 돕기 등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 동창회로 진화하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