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첩/야생화 마당

토끼풀네잎크로버) 이야기

황소-황동훈 2008. 1. 31. 14:50

[토끼풀 이야기]

유럽이 작은 나라들로 나뉘어 싸움이 끊이지 않았던 먼 옛날입니다.
어느 조그마한 나라에 젊고 용감한 기사가 있었습니다. 이웃 나라가 쳐들어오다는 소식을 들은 기사는 앞장 서서 싸움터로 달려갔습니다.

"가히 우리 땅을 넘보다니. 용서할 수 없다! 한 발짝도 들여 놓지 못하게 할 테다."

기사는 적은 수의 군사와 힘을 모아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죽기를 각오한 군사들은 적병을 맞아 맹수처럼 싸웠습니다. 싸움은 3일동안 계속 되었습니다.
적진 깊숙이 들어가 싸우던 기사는 너무 지쳐 정신을 잃고쓰러졌습니다.
얼마 뒤. 기사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사방이 고요 했습니다.
들판에는 병사들의 시체가 가득했습니다. 살아있는 것이라로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적병을 무찌른 기사의 동료 병사들도 모두 목숨을 잃은 것이었습니다.
혼자 살아 남기는 했지만 기사도 심한 상처 때문에 정신이 점점 흐릿해졌습니다.
"아아. 우리 병사들이 모두....나도 여기서 죽는구나."

몸을 일으켜 보려고 했지만 피에 젖은 몸은 꽁꽁 얼어붙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기사는 몽롱한 기억을 더듬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야 해. 율리아나가 기다리고 있는 고향으로....."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던 마을 지붕들과 높다란 교회 탑, 아름다운 숲들이 기사의 눈앞에 어른거렸습 니다.
그 풍경위로 기사가 사랑하는 약혼녀의 모습이 스쳤습니다.

"꼭 살아서 돌아오셔야 해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율리아나는 기사가 싸움터로 떠나던 날, 성 밖까지 따라 나오며 기도하듯 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수놓아진 하얀 손수건을 내밀었습니다.

"고맙소. 이손수건을 당신에게 돌려주기 위해서라도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겠소."

지금 그 하얀 손수건을 붉게 물들었습니다.

"미안하오, 율리아나."

기사는 힘없이 중얼거리며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힘이 다했나 봅니다. 얼어붙은 땅바닥이 포근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뭔가 차가운 것이 얼굴을 스치는 기운에 기사는 눈을 떴습니다.

'내가 아직 살아 있는 걸까?'

믿어지지 않게도 기사의 몸에 붕대가 감겨 있었습니다. 피투성이었던 얼굴도 깨끗이 씻기고 이마 위에는
하얀 손수건이 덮여 있었습니다.

'누굴까, 나를 치료해 준 사람이?'

주위에는 병사들의 시체 대신 나무 십자가가 늘어서 있었습니다. 누군가 병사들을 묻고 십자가를 세워 놓은 것입니다.

"이제 정신이 드세요? 다행이에요."

어디선거 고운 목소리와 함께 소녀가 나타났습니다.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가벼운 몸짓으로 기사를 보살펴 주는 소녀의 모습은 마치 천사 같았습니다.

"다, 당신은 누구시죠? 이 싸움터에 어떻게......?"

소녀는 미소를 지을 뿐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치료가 끝나자 소녀는 조용히 떠났습니다.

"어디서 왔을까? 이 근처에 마을이 있을 리 없는데......"

옷자락을 휘날리며 사라져 가는 소녀를 눈으로 좇으며 기사는 스르르 잠에 빠졌습니다.
다음 날 새벽에도 소녀가 찾아왔습니다. 병사들의 무덤에 꽃을 바치고 기사의 상처를 치료한 소녀는 먹을 것을 내려 놓은 다음 바람처럼 사라졌습니다.
며칠 동안 똑같은 일이 되풀이되었습니다. 어느덧 기사도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먼동이 트기 바쁘게 나타난 소녀가 말했습니다.

"자, 일어나세요. 이제 걸을 수 있을 거에요. 그리운 사람이 기다리고 있어요. 안녕히 가세요."

말을 마치고 떠나려는 소녀를 기사가 급히 붙잡았습니다.

"그냥 가시지 마세요. 제 목숨을 살려 주셨는데, 이름이라도......"

그러나 소녀는 미소를 지을 뿐이었습니다.
기사는 고마움의 표시로 소녀에게 무언가 주고 싶었지만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꺾어 주고 싶었지만 겨울이라 들판은 썰렁하기만 했습니다. 다급해진 기사는 자기가 누워 있던 풀밭에 돋아난 가녀린 풀입을 뜯어 소녀에게 건넸습니다.

"이거라도 받아 주십시오. 간절한 제 마음입니다."

소녀는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그 풀을 받았습니다. 잎이 세 개이던 그 풀은 그 소녀의 손에서 네 잎이 되었습니다.

"이 네잎 토끼풀은 행운을 가져다 준답니다."

소녀는 이렇게 속삭이고 기사의 윗주머니에 네 잎 토끼풀 하나를 꽂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들판 저편으로 사라졌 갔습니다.

"아, 여신이시여!"

기사는 멀어져 가는 소녀의 어깨에서 빛나는 날개가 돋아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소녀는 율리아나가 날마다 기도를 드렸던 전쟁의 여신 벨로나였던 것입니다.
세 잎뿐이던 토끼풀에 네 잎이 생긴 것은 이 때부터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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