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양식/정치·경제

을사늑약 무효 서신

황소-황동훈 2008. 2. 26. 15:18


대한제국 황제인 고종(사진)이 일제의 강제로 체결된 을사늑약(1905년 11월)을 저지하기 위해 그해 12월 유럽 주재 공관들에 훈령을 내린 사실이 22일 밝혀졌다. 고종은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에게 보낸 밀서(본지 2월 20일자 1면) ▶서구 열강의 정상에게 보낸 국서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이준 열사 등 밀사 파견에 앞서, 공식 외교 채널을 통해 입체적인 총력 외교를 펼쳤던 것이다.

특히 고종은 이 훈령을 통해 주재국 정부에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는 한편 전면 문호개방과 함께 일본에 부여한 것과 똑같은 특권을 주겠다는 뜻을 전하라고 지시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훈령에는 “이 나라가 번영을 되찾으려면 우리는 과거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고종의 처절한 현실 인식이 담겨 있다. 고종은 이어 “미국과 다른 외국인에게 문호를 개방하며 일본인과 같은 권리와 특권을 주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 훈령은 이용익 전 군부대신, 주독일 공사 민철훈, 주러시아 공사 이범진, 주프랑스 공사 민영찬 앞으로 보냈다.

이 같은 사실은 고종이 1906년 1월 독일 빌헬름 2세에게 보낸 밀서의 전달자였던 고종의 프랑스인 정무 고문 알퐁스 트레믈레의 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트레믈레가 고종의 밀서를 황제에게 전달하기 위해 외무부 차관 앞으로 보낸 편지 형식의 글에 동봉돼 있었다.

이 문서는 독일 외무부 정치문서보관소에 소장돼 있었는데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유영렬)가 2003년 복사해서 보관하고 있었다(수집번호 051200762). 대한제국 시기의 외교문서를 번역·해설 작업 중인 명지대 정상수 연구교수가 발견했다.

1906년 5월 19일 베를린에서 프랑스어로 쓴 이 문서는 ▶인사글 ▶훈령(프랑스어로 번역) ▶대한제국 상황 등 모두 8장으로 구성됐다.

서울대 이태진(국사학) 교수는 “고종이 을사늑약에 대응하기 위해 해외 공관에 훈령을 보냈다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고종의 전방위 외교 노력이 윤곽을 드러냈다” 고 평가했다.

고종은 을사늑약 이후 훈령(1905년 12월)-빌헬름 2세 밀서(1906년 1월)-국서(1월)-헐버트 특별위원에게 건넨 친서(1906년 6월), 프랑스 대통령 등 9개국 정상에게 보낸 친서(6월)-헤이그 밀사(1907년 6월) 순으로 필사적인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던 사실이 이 자료로 확인된 것이다.

이 편지는 “고종의 지시에 의해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호소하고 대한제국의 전면 문호 개방 계획을 담은 공문이 대한제국의 공사를 통해 1906년 12월 전달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며 주독일 공사 민철훈에게 훈령을 보낸 사실을 적고 있다.